2011년 12월 21일
[책] 로렌스 옙, '용의 날개'
아름다운 책의 표지에 이끌려 고르게 된 책.
뽑아 들어 살펴보니, 저자는 잘 모르지만 번역자의 이름이 '김연수' 로 적혀있다.
혹시나 해서 책의 정보를 찾아보니 내가 아는 소설가 김연수가 맞다.
그가 번역가로 활동했던 시절에 펴낸 책인가보다.
번역에도 또한 번역자의 글의 향기가 묻어난다고 믿기에 책을 골라들게 되었다.
소설가 김연수의 번역자로서의 역량도 엿보고 싶은 마음.
돈을 벌기 위해 황금산이 있다는 나라, 미국으로 떠난 중국인 이민자들의 이야기.
놀랍게도, 책을 쓴 로렌스 옙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국인이다.
그럼에도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영씨 집안의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뱀의 아이들], [마음의 도둑], [바다 유리], [산의 불빛], 그리고 뉴베리 명예상을 받은 [용문] 등
여러 편의 소설을 집필했다.
본인이 겪은 이야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소설로 그려내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미국에서 이민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중국인의 이야기를,
그 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권력에 해당하는 '양귀' 미국인이 말이다.
어쩌면 단순히 '관점이 다른 것' 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 반대의 관점일지도 모르는 일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다보면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로렌스 옙은 중국인들의 삶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의 철학과 그 바탕에 깔린 긍지까지도
완벽하게 글로 표현해낸다.
그들의 삶을 오래도록 바라본 로렌스 옙의 애정어린 시선 덕분이 아닐까.
월영은 아홉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날,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을 떠난 아버지를 따라
'황금산의 나라' 미국으로 떠난다.
무시무시한 양귀들로 가득한 나라에서 이민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중국인들은
당조 마을을 꾸려 (차이나타운) 서로 끈끈한 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월영의 아버지 풍기는 '바람을 타는 사람', 자신이 전생에 용이었다는 꿈을 굳게 믿고
언젠가는 반드시 하늘을 날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양귀의 나라에서 꿋꿋이 살아나간다.
눈만 돌리면 아편굴과 도박, 술이 지천으로 널린 희망 없는 땅에서
결국 스스로를 망가트리는 함정에 빠져버린 흑견 아저씨는
틈만 나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꿈을 가진 월영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월영과 아버지 풍기의 꿈을 짓밟으려 든다.
"너는 지금 어떤 것과 맺어지게 된 것인지 얘기를 듣고 싶구나.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떤 삶과 맺어졌는지 말이다.
왜 네 삶이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다."
...
'불쌍한 흑견 아저씨. 그걸 모르다니. 그 어떤 삶이라도 아름다운 법인데 말이다.
남은 게 그저 희망 뿐이라고 해도, 그 희망만은 아름다운 법인데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니, 당연한가?
내가 어떤 삶의 고민에 빠져있는가에 따라 같은 책이라도 몇 번씩 다르게 읽힌다는 것.
아마 이런 때가 아니었다면 그저 쉽게 넘어갔을 부분이 나를 끌어당겼다.
비행기를 만드는 아버지의 꿈을 돕기 위해 월영은 최초로 비행기를 고안한 라이트 형제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양귀 아줌마 휘틀로 부인의 도움을 빌어 편지를 쓴다.
마침내 기다리던 그들의 답장을 받아 아버지께 자랑스레 내밀었지만,
뜻밖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편지를 집어던지고 만다.
상심한 나머지 휘틀로 부인을 찾아간 월영에게 히틀로 부인은 이렇게 말을 건넨다.
"아마도 진짜 용이라는 건 말이야,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용과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용을 합쳐 놓은 게 아닐까 싶다.
용이란 항상 나쁜 것도 항상 좋은 것도 아닐 거고,
항상 못된 것도 항상 친절한 것도 아닐 거야.
자연의 움직임과 연결된 어떤 동물이 아닐까?
자연이란 말이지, 좋을 때는 정말 좋다가 끔찍할 때는 너무 끔찍하지.
나는 네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 때문에 네가 다칠지도 몰라."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감정 표현이 굉장히 강렬한 나는
때로는 그 열정적인 에너지로 즐거움을 내뱉으며 사람들을 이끌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분노의 기운으로 바깥을 향한 적과 당당하게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런 에너지의 표출이 다만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향한 분노나 슬픔으로 향할 경우,
나는 너무나도 폭력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에게 큰 상처를 입히곤 한다.
다만 이런 흘러 넘치는 감정의 표현이 바로 내 모습이고
이것이 긍정적으로 쓰일 때에는 나의 매력이 되지만
그게 아닐 때에는 괴물로 변해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휘두르는 못된 모습으로 내비친다.
그 분노를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거나 감정이 고여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만큼의 강렬한 감정의 화산을 안에 품고 있는 것.
그러나 이렇게 내가 부정하고 싶은 나의 모습 또한 나 자신의 일부인 것을.
좋을 때의 나와 끔찍할 때의 나는 결국 하나이다.
이 기운을 어떻게 다스려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는
내 자신에게 달린 것. 내 자신의 성장에 대한 의지에 달린 것일 뿐.
...
# by ㅎㅇ | 2011/12/21 12:35 | 개인의 취향 | 트랙백 | 덧글(0)



